"하? 왜?"

분명 아까전까지는 맑았는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막을 우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운명은 조금 망연자실하게 유일한 파트너인 패리퍼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데, 어쩌지.' 패리퍼는 깜빡거리다가, 날개를 펼쳐 트레이너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이렇게 하면 비를 안 맞을 수 있지 않을까?'

"…… 고마워."

트레이너는 힘없이 중얼거렸고, 포켓몬은 기뻐했다―필요한 존재가 되는 일은 중독성이 있었다.


돌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곤란할 정도로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내렸다. 패리퍼의 날개로 우산을 대신한 덕분에 그다지 젖지는 않았지만, 운명은 예상보다도 일찍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쩌면 역시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만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 비는 신이 내게 내리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뭘 시작해도 실패할 거야 실패할 거야 역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아, 하고, 진흙이 된 흙을 밟는 발걸음마다 새기며 멀지 않은 온 길을 돌아가 집으로, 집으로.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도달하자,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먹구름이 운명을 따라온 것이다. 끊임없는 잔비는 현관을 적시고, 거실을 적시고, 방을 적시고……

그러나 운명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다. 다만 비가 아닌 강한 햇살이, 실내에도 가득하게 쏟아지던 기억이 저주스러워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운명은 쓰게 웃었다.  

"패리퍼, 돌아와."

빛에 감싸인 채 패리퍼가 볼 안으로 되돌아가자, 당연하다는 듯이 비가 멎었다. '역시나.' 축축해진 운명은 손 안의 몬스터볼을 힐끔 보았다.

"…… 그나저나 곤란한 포켓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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