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하여간 신오지방, 그 춥기만 하고 볼 것도 없는 후진 동네가 뭐가 좋다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니까."

늘어지는 말들을, 청자보다는 차라리 관찰자가 된 기분으로 흘려들으며 운명은 자신이 도대체 왜 이 저택으로 돌아왔는지 고민했다. 그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러니까, 적어도 이런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들으러 온 게 아닌데. 웬 파비코리마냥 하얗고 보송보송하고 찰랑찰랑한 다탱구의 털을 쓰다듬으며 운명은 건성으로 끄떡거렸다. 굳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포켓몬들이 있는 좋은 곳이라고 항변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 저기~ 듣고 있어?"

"우웅, 신오지방이 싫다며~."

"아니 근데, 기껏 내 라이벌이 될만한 반짝반짝한 아이를 찾았더니 신오지방으로 튀어버렸다니까? 참, 이해가 안 가서 …… 뭐, 호연에 비가 많이 와? 그렇게 치면 신오지방은? 땅이 푹푹 꺼지는 것보단 비가 오는 게 낫지 않냐?"

"그래, 뭐……" 너는 잔디마을에 살아서 모르겠지만 해안이나 산지에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라이벌 등장이야? 웬일이래~?"

"이제 막 마스터랭크로 올라온 것 같아서, 내 상대가 되려면 한~참 멀었겠지만?"

"뭐야, 신인?"

"그래도 그 팬텀은 가능성이 보인단 말야, 가. 능. 성. 이. …… 보였었는데~ 신오지방 같은 촌구석으로 갔으니, 이제 앞으로 볼 일 없을 것 같아서 아쉽다, 아쉬워~."

과장스레 손부채질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적당히 듣는 척 질문도 섞어서,

"완전히 이민 가버린 거야?"

"글쎄?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연고시티에서 슈퍼 콘테스트따위나 해서야 감각이 무뎌져서~ 돌아와서도 콘테스트 라이브에는 덤빌 수 없을 걸."

과연, 그런 논리구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걔는 왜 굳이 신오지방으로 갔을까~? 걔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

맞춰주듯이 연극적으로 물어보면, 리드미컬하게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자연재해도 있고. 걔가 쫓아다니는 햇병아리가 있는데, 그 애기도 신오 출신이라나? 사랑에 퐁당," 그녀가 커피에 각설탕을 떨어트렸다. "폭포를 내려가는 사랑동이처럼 빠져서 쫓아간 거 아닌지 몰라~."

"애기? 어려?"

"걔도 싱싱하게 젊은데, 걔가 쫓아다니는 애는 더 어린 거 같더라? 전에 콘테스트홀에서 한 번 봤거든~. 조그매서 애기처럼 생긴 건지, 진짜 애기인지~. 작고 하얗고 예쁘더라? 부럽게~."

작고 하얗고 예쁘다, 라……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너는 그렇게 되고 싶어 했었지. 염원이 무색하게도 눈앞의 그녀는 길쭉한 데다 뼈가 굵고, 그렇게까지 하얗지도 않다. 외모는 원한다고 그대로 될 수 없지,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에릭단이 다 같이 모여있었던 밤에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는 다들 크고 싶다는 이야기였는데 작아지고 싶은 사람도 있다니, 아이러니하군?

"옆에 큼직한 리자몽을 달고 다녀서 그런지 더 작아 보이더라~. 나는 블레이범이랑 서 있어도 더 커 보이기만 하는 거 같은데."

푸념을 이어나가며 그녀가 커피스푼을 휘휘 저었다.

"아무튼 그래서 슬기로움 부문에서 우리 트리토돈의 적수는 아직 없다는 말. 씀."

"…… 정말?"

땅에 가시를 단단히 박아 마당에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차지한 천관산[너트령] 옆에 늘어진 트리토돈에 잠시 시선을 옮겼다. 대범한 아이들끼리 죽이 잘 맞는 모양이었다.

"왜, 트리토돈을 못 믿어? 아니면 설마 이 나를 못 믿나?"

대답하기 편하게 돌아오는 질문에, 운명이 킥킥 웃었다. "트리토돈은 믿지. 너는 못 믿고."

"네 이 녀석~……"

반쯤은 진심인 듯한 신경질에 귀를 막듯이, 운명이 다탱구의 폭신한 머리에 옆얼굴을 살포시 기대었다.

다탱구,

속삭이듯 불렀다.

여기서 사는 거, 질리지는 않구?

다탱구는 귀를 쫑긋거리더니, 별안간 씩 웃었다. 가끔은 질리지, 하고 그녀에게 들으라는 듯이 대답했다. 뜻밖의 대답에 그녀는 커피스푼을 떨어트렸다. 쨍그르르, 커피스푼이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뭐~? 질려~?!"

운명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기뻐져서, 조금 상기된 얼굴로, 조금 재빠르게 후속타를 넣었다.

"그럼 나랑 같이 여행할래?"

다탱구가 부채를 펼쳐서 미풍이 불었다. 여행의 첫날을 고하듯이 잔디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살랑거렸다. 맑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 햇살을 받는 우리들―모든 것은 정말로 영화에 나오는 여행의 첫날처럼.

"우, 우리는 콘테스트 연습으로 바쁘거든?!"

완전히 진심이 되면 조금 낮은 목소리를 내버리는 제 트레이너를 향해 다탱구가 파하하 웃었다. 테이블에 폴짝 뛰어올라, 그녀에게 반박했다. 아니야, 안 바쁘려면 안 바쁠 수도 있잖아. 그다음에는 뒤돌아 운명을 향했다. 어쩐지 완전히 웃지는 못하며.

여행, 난 좋아. 대찬성.

이를 드러내며 웃다가도,

그치만 여기에 돌아올 거야.

어쩐지 조금 미안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포켓몬의 선언에 가슴을 쓸어내린 쪽은 포켓몬 코디네이터 미스·뷰티플라이였다. 그래, 내 포켓몬이 나를 버릴 리가 없지. 그러나 사실은 완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만이 확신을 원한다.

"네가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은―끝내 다시 너를 선택하지 않을 거야. 그래야지 공평하잖아? They say, karma's a bitch. 인과응보라고 알아?"

높게 끌어올린 목소리, 또박또박한 발음―그녀는 미스·뷰티플라이를 온몸에 걸친 채로 연설했다.

그러나 운명은 역광 속에서도 어린 시절의 악우를 보았다. 그에게 물었다.

"…… 인과라는 게 정말 있다면, 너는 대체 어떡하려고 그래."

운명은 나쁜 업보를 쌓은 사람을 몇 알고 있었다. 어떤 기업의 CEO라든가…… 그 누구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보를 쌓은 이도 있었지만, 제 악우도 업보 랭킹에서 하위권에 들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무대에서 보여줄게.

마스터 랭크 아름다움 부문 콘테스트 라이브, 그렇게 말한 만큼의 무대는 되었다.

그녀와 블레이범은 연옥 속에 있었다.

영겁 같이 휘몰아치는 순간의 불길을 관람하던 운명은, 문득 그녀가 앞으로도 영영 무대에서 내려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영. 공연이 끝나도 미스·뷰티플라이인 채, 그녀에게 막은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한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포켓몬들이, 이번에는 그들의 선택으로 그 끝없는 무대에 올랐다.

바란 것은 영광이었다.

그녀는 발뒤꿈치가 까져도 높은 구두를 신는 사람이었다.

영광의 뒤편에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저주를 받은 사람 한 명과 포켓몬 여섯 마리.

누군가가 외쳤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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